중학 역사② · 한국사
YEON HISTORY · UNIT 05

조선 사회의 변동

2022 개정 교육과정 · 조선 후기 사회·경제 변동과 새로운 문화의 형성
이 단원을 마치면 — ① 양난 이후 통치 체제와 수취 제도의 개편(대동법·균역법)을 설명할 수 있고, ② 모내기법 확대와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신분제 동요를 짚을 수 있으며, ③ 실학과 서민 문화(풍속화·한글 소설)가 꽃핀 까닭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왜 배울까?

두 번의 큰 전쟁(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조선은 흔들립니다. 그런데 이 단원의 주인공은 왕이나 장군이 아니에요 — 땅을 가는 농민, 장터의 장사꾼, 글을 읽기 시작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세금을 토지 기준으로 바꾸고(대동법), 모내기로 수확을 늘리고, 상평통보로 물건을 사고팔며, 한글 소설을 읽고 풍속화를 즐겼지요.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조선은 천천히 바뀌어 갑니다. '사회는 누가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는 눈을 이 단원에서 길러요.

이 교과서의 약속. 연 역사교과서는 어느 정파에도 기울지 않습니다. 확인된 사실은 1차 사료와 학계의 정설로 적고,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여러 시각을 출처와 함께 나란히 보여 줄 뿐,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료를 읽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 — 그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 출발 점검 — 지난 시간, 기억하나요?

· 임진왜란·병자호란, 즉 양난이 조선에 어떤 어려움을 남겼을까요?
· 조선의 세금은 원래 무엇으로 냈을까요(쌀·특산물·노동·군포…)?
두 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해지고 인구가 줄어 나라 살림과 백성의 삶이 모두 어려워졌어요. 조선의 수취는 본래 전세(토지)·공납(특산물)·역(노동·군포) 세 갈래였는데, 특히 공납이 무겁고 불공평해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이를 어떻게 고치느냐가 이 단원의 출발점이에요.
조선 후기의 따뜻한 수채 풍경
저잣거리의 활기 — 아래로부터 바뀐 조선 후기. 그림: 힉스필드 AI 수채 생성 · 연라이프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1 양난 이후 — 통치 체제와 수취의 개편

임진왜란·병자호란(양난) 뒤 조선은 무너진 살림을 다시 세워야 했어요. 군사·정치를 의논하던 비변사가 최고 기구로 커지고, 수도를 지키는 5군영이 갖춰집니다. 무엇보다 백성의 세금을 손봤어요. 전세는 풍흉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거두는 영정법으로, 가장 무거웠던 공납(특산물)은 토지를 기준으로 쌀·베·돈을 내는 대동법으로 바뀝니다(광해군 경기 시작 → 숙종 때 전국). 군포 부담은 균역법(영조)으로 2필에서 1필로 줄였지요. 수취 개편 셋 = 영정법(전세)·대동법(공납)·균역법(군포).

왜 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바꿨을까

공납은 본래 집집마다 특산물을 내게 했는데, 가난한 집이나 부유한 집이나 거의 같은 양을 내야 해 불공평했어요. 게다가 구하기 힘든 물건을 대신 사 주고 비싸게 받는 방납의 폐단까지 겹쳤지요. 그래서 '토지 가진 만큼' 내게 바꾸니 농민 부담이 한결 공평해졌습니다.

대동법은 왜 100년 넘게 걸려 퍼졌나 — 두 시각

① 양반·지주의 반발 — 땅이 많을수록 더 내야 해서 기득권층이 반대했다. ② 재정·운영의 신중함 — 한꺼번에 바꾸면 나라 살림이 흔들릴까 봐 지역별로 조심스레 확대했다. 광해군(경기, 1608)에서 숙종(전국, 1708)까지 100년이 걸린 데는 두 사정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대동법으로 세금이 없어졌다"?

오해예요. 대동법은 세금을 없앤 게 아니라 걷는 방식을 바꾼 제도예요. 내는 물건이 특산물에서 쌀·베·돈으로 바뀌고, 기준이 집(호)에서 토지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부담이 공평해졌을 뿐 세금 자체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기 — 대동법이 경제를 깨운다

대동법으로 나라가 쌀·돈을 거두자, 필요한 물품을 사 들이는 공인이 등장합니다. 공인이 시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들이니 상업과 수공업이 활기를 띠었어요. 세금 개혁 하나가 다음 절(상품화폐경제)의 씨앗이 된 셈이지요.

🧩 사료 탐구실 — 대동법을 둘러싼 말들

대동법의 시행과 효과를 두고 남은 기록들입니다. 아래 구절을 눌러 보세요 — 그것이 알려 주는 조선 후기의 사정이 아래에 나타납니다.

집집마다 토산물을 바치게 하니 가난한 자가 더 괴로웠다. 이제 토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쌀을 내게 하라. 관청이 쓸 물건은 공인에게서 사들이게 되었다.
위 밑줄 친 구절을 누르면 — 그 말이 비추는 조선 후기 수취·경제의 변화가 여기에 보입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대동법 관련 기록 — 인용문은 뜻이 통하도록 연라이프가 자체 요약·번역.

🔑 외우기 한 수

수취 개편 셋은 세금 종류로 짝지어요 — 영정법=전세 · 대동법=공납 · 균역법=군포. "전·공·군 셋을 손봤다"만 잡으면 끝! 대동법 = '토지 기준 쌀', 균역법 = '군포 2필→1필'.

✏️ 30초 떠올리기

공납(특산물)을 토지 기준으로 바꿔 쌀·베·돈을 내게 한 법은?

정답은 대동법. 광해군 때 경기에서 시작해 숙종 때 전국으로 퍼졌고, 공인이 등장했어요.

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준 군역 개혁은?

정답은 균역법. 줄어든 군포는 어염세·결작 등으로 보충했어요.

2 경제 변화와 신분제의 동요

농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를 따로 길러 옮겨 심는 모내기법(이앙법)이 널리 퍼지면서 김매기가 쉬워지고 수확이 크게 늘었어요. 한 사람이 넓은 땅을 짓는 광작, 벼와 보리를 한 해에 거두는 이모작, 인삼·담배 같은 상품작물 재배가 활발해집니다. 늘어난 생산물은 장시에서 거래되고, 보부상·사상·공인이 활동했으며 상평통보가 널리 쓰였지요. 부를 쌓은 농민·상인은 공명첩·납속으로 양반이 되기도 해 신분제가 흔들립니다 — 양반은 늘고, 노비는 줄었어요. 아래 흐름으로 모내기법 → 상품화폐경제 → 신분제 동요를 따라가 보세요.
모내기법 확대 광작·이모작·상품작물 농업 상품·화폐 경제 장시·보부상·상평통보 상업 신분제 동요 공명첩·납속(양반↑ 노비↓) 사회
▶ 재생을 눌러 조선 후기 변화 흐름을 단계별로 따라가 보세요.

무료 흐름 애니메이션 — 영상이 아니라 코드로 그려, 데이터가 가벼워요.

구분조선 전기조선 후기
농업직파법 중심, 좁은 땅 경작모내기법(이앙법) 확대 → 광작·이모작·상품작물
상업시전 중심, 자급자족장시 발달, 보부상·사상·공인, 상평통보 유통
신분양반·중인·상민·천민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공명첩·납속으로 양반↑ 노비↓, 양반 분화
신분제 동요, 어떻게 볼까 — 두 시각. ① 발전으로 보기 —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노력으로 쌓은 부로 지위가 오를 수 있게 되어, 능력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봅니다. ② 혼란으로 보기 — 돈으로 신분을 사고팔면서 오래된 질서가 무너지고 양반의 권위와 나라의 기강이 흔들렸다고 봅니다. '양반이 늘고 노비가 줄었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변화를 발전으로 읽을지 혼란으로 읽을지는 보는 눈에 따라 갈립니다.

왜 모내기법이 신분제까지 흔들었나

모내기법으로 한 사람이 더 넓은 땅을 지을 수 있게 되자(광작), 수확과 소득이 크게 늘었어요. 부를 쌓은 농민은 공명첩을 사거나 납속으로 양반 신분을 얻었고, 반대로 땅을 잃은 농민은 품팔이·도시 빈민이 됐지요. 농사 기술 하나의 변화가 경제 → 신분까지 연쇄로 흔든 것입니다.

"양반이 늘었으니 다들 잘살게 됐다"?

오해예요. 양반 수가 늘었다고 모두가 부유해진 건 아닙니다. 부를 쌓아 신분이 오른 이가 있는가 하면, 땅을 잃고 몰락한 양반(잔반)도 많았어요. 양반층 안에서도 위아래 차이가 커진 것(양반의 분화)이 더 정확한 모습입니다.

더 나아가기 — 상평통보가 바꾼 일상

엽전 상평통보가 널리 쓰이자, 물건을 사고팔 때 쌀·베 대신 으로 셈하게 됐어요. 돈을 모으고 빌려주는 사람도 생기고, 장시가 더 활발해졌지요. '돈으로 거래하는 세상'은 사람들의 생각과 욕구까지 조금씩 바꿔 놓았습니다.

🔑 외우기 한 수

조선 후기 키워드 셋 — 이앙법(모내기) · 상평통보 · 공명첩. "모내기로 벌어서(이앙법), 돈으로 사고팔고(상평통보), 양반을 사다(공명첩)" 한 문장으로 외워요!

✏️ 30초 떠올리기

조선 후기에 널리 퍼진 모내기법(이앙법)의 효과로 알맞은 것은?

정답은 광작·수확 증가. 김매기가 쉬워져 한 사람이 넓은 땅을 짓게 되고 생산이 늘었어요.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인 화폐는?

정답은 상평통보. 장시가 늘면서 엽전이 일상 거래에 널리 쓰였어요.

3 새로운 사상과 서민 문화

삶이 바뀌니 생각도 바뀝니다. 현실 문제를 풀려는 학문 실학이 일어났어요. 토지 제도를 고쳐 농민을 살리자는 중농학파(유형원·이익·정약용), 상공업을 키우고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중상학파(홍대용·박지원·박제가), 우리 역사·지리·언어를 연구한 국학(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이 그 갈래예요. 한편 글을 읽는 평민이 늘면서 한글 소설(홍길동전·춘향전)·판소리·탈춤이 사랑받고, 풍속화(김홍도·신윤복)와 민화가 일상을 담았지요. 새 종교인 천주교동학도 이때 등장합니다. 실학(현실을 고치는 학문) + 서민 문화(평범한 사람들의 예술)가 함께 피었어요.

왜 '실학'이 일어났을까

양난 이후 백성의 삶은 어려운데, 당시 학문(성리학)은 주로 예법·이론 논쟁에 치우쳐 현실 문제를 잘 풀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토지·상공업·우리 역사처럼 실제 삶을 낫게 할 학문에 눈을 돌렸지요 — 그것이 실학입니다.

서민 문화를 어떻게 볼까 — 두 시각

① 성장으로 보기 — 평민도 예술과 글의 주인공이 되어 문화의 폭이 넓어졌다. ② 한계도 보기 — 여전히 신분 차별과 가난이 컸고, 향유층이 일부에 머문 면도 있다. 한글 소설·풍속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며, 그 의미를 크게 볼지 신중히 볼지는 시각에 따라 갈립니다.

"실학자들의 주장이 바로 나라 정책이 됐다"?

오해예요. 실학은 빛나는 생각이었지만, 대부분 당대에는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 현실을 깊이 살핀 그 연구들은 뒷날 근대 개혁과 국학 연구에 큰 밑거름이 되었지요.

더 나아가기 — 풍속화가 남긴 '그날의 사진'

카메라가 없던 시절, 김홍도·신윤복의 풍속화는 씨름·서당·빨래터 같은 보통 사람들의 하루를 생생히 담았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림 한 폭으로 200년 전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 놀이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 외우기 한 수

실학은 중농·중상·국학 세 갈래! 서민 문화는 풍속화(김홍도·신윤복)·한글소설(홍길동전·춘향전)이 대표. "땅·장사·우리것(실학) + 그림·소설(서민)"으로 묶어요.

✏️ 30초 떠올리기

전국을 정밀하게 그린 대동여지도를 만든 인물은?

정답은 김정호. 우리 것을 연구한 국학의 대표 성과예요.

씨름·서당처럼 서민의 일상을 담은 조선 후기 그림은?

정답은 풍속화(김홍도·신윤복).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았고, 민화도 함께 사랑받았어요.
🏺 유물·그림으로 보는 조선 후기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김정호) — 조선 후기 국학의 결실, 정밀한 우리나라 지도.
김홍도 씨름
씨름(김홍도) —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담은 조선 후기 풍속화.
상평통보
상평통보 —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인 엽전 —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을 보여 줘요. 국립중앙박물관 · 공공누리 1유형
그림: 위키미디어 공용 — 대동여지도(PD) · 김홍도 「씨름」(PD).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 한 장 핵심

📖 이 단원의 말 사전

대동법
공납을 집(호)이 아닌 토지 기준으로 쌀·베·돈을 내게 한 법. 공인이 등장.
균역법
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의 군역 부담을 던 법.
이앙법
모를 따로 길러 옮겨 심는 모내기법. 김매기가 쉬워 수확이 늘었다.
상평통보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인 엽전(화폐). 장시 거래에 두루 사용.
공명첩
이름 칸을 비워 둔 관직 임명장. 곡식·돈을 내면 신분을 살 수 있었다.
실학
현실 문제를 풀려 한 학문(중농·중상·국학 갈래).

연습문제 — 3단

교과서 핵심 사실을 바르게 짚었는지 확인합니다.

1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바꿔 쌀·베·돈을 내게 한 법의 이름을 쓰시오.
정답·해설
대동법. 광해군 때 경기에서 시작해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공인이 등장했습니다.참 검증
2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준 군역 개혁의 이름을 쓰시오.
정답·해설
균역법. 줄어든 군포는 어염세·결작 등으로 보충했습니다.
3조선 후기에 널리 퍼진 모내기법(이앙법)의 효과를 한 가지 쓰시오.
정답·해설
예: 광작이 가능해지고 수확량이 늘었다(이모작도 가능). 김매기가 쉬워져 한 사람이 넓은 땅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료를 읽고 그 속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1"토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쌀을 내게 하라"는 대동법이 농민에게 준 변화를 서술하시오.
정답·해설
땅이 적은 농민의 부담이 줄어 한결 공평해졌다(부담 경감). 집집마다 똑같이 내던 공납이 토지 기준으로 바뀌어, 가난한 농민에게 유리해졌습니다.참 검증
2"관청이 쓸 물건은 공인에게서 사들이게 되었다"는 기록이 알려 주는, 대동법이 경제에 끼친 영향은?
정답·해설
공인이 시장에서 물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상업·수공업이 활기를 띠었다. 세금 개혁이 상품화폐경제를 키운 셈입니다.

여러 시각을 견주어 근거를 들어 자기 생각을 씁니다. 정답을 외우는 문제가 아닙니다.

1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를 '발전'으로 볼지 '혼란'으로 볼지 — 한 입장을 택해 근거 두 가지를 들어 서술하시오.
예시 답안·채점 관점
발전 입장 예: ①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노력(부)으로 지위가 오를 길이 열렸다. ② 능력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갔다. 혼란 입장 예: ① 돈으로 신분을 사고팔며 오랜 질서가 무너졌다. ② 양반의 권위와 나라 기강이 흔들렸다.
채점 관점: 어느 입장이든 근거 2개 이상이면 인정. 핵심은 결론이 아니라 근거의 타당성입니다('양반↑ 노비↓'라는 사실은 공통).
2실학이 당대에는 정책으로 거의 채택되지 못했는데도, 오늘 우리가 그것을 중요하게 배우는 까닭은 무엇일지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채점 관점
채점 관점: 실학이 현실 문제(토지·상공업·우리 역사)를 해결하려 한 자세와, 그 연구가 뒷날 근대 개혁·국학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으면 좋은 답입니다. '당장의 성공 여부'와 '역사적 의미'를 구분해 보는 태도가 핵심.

📝 내 말로 설명하기

"조선 후기가 '아래로부터 바뀌어 간 사회'라 할 수 있는 까닭"을, 농업·경제·신분·문화의 변화 가운데 두세 가지를 들어 적어 보세요.

예시) 조선 후기는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시작됐다. 농민은 모내기법으로 수확을 늘려 부를 쌓았고, 장터에서 상평통보로 사고팔며 상업을 키웠다. 부를 쌓은 이들이 공명첩·납속으로 양반이 되며 신분제가 흔들렸고, 평민이 한글 소설·풍속화의 주인공이 됐다. 그래서 '아래로부터 바뀐 사회'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흐름 · 풍속화 족자

한 폭 그림에 담은 조선 후기의 변화

유물(풍속화 족자)을 뼈대로, 그 안에 위에서 아래로 변화를 채웠어요 — 대동법, 상품·화폐 경제, 신분제 동요, 서민 문화. 그림 한 폭으로 흐름을 느껴 보세요.

대동법공납 개혁 상품·화폐 경제장시·상평통보 신분제 동요양반↑ 노비↓ 서민 문화·실학한글소설·풍속화

연필 크로키 '풍속화 족자(유물 뼈대)' — 단원마다 그림이 달라져요. 외우지 말고 흐름을 느껴 보세요 · 연라이프 자체 제작 SVG(자유 사용·출처 표기).

🌿 단원 마무리 — 눈 감고 떠올리기

7초 동안 눈을 감고, 위 족자 그림(대동법 → 상품·화폐 경제 → 신분제 동요 → 서민 문화)을 위에서 아래로 떠올려 보세요. 떠올린 만큼이 진짜 내 것입니다.

💬 오늘 학습, 어땠나요?

로그인 없이도 남길 수 있어요. 여러분의 한마디가 다음 단원을 더 좋게 만듭니다.

만족도 — 10점 만점
1 · 아쉬워요최고예요 · 10
의견·바라는 점 (자유)

개인정보는 받지 않아요(별명만) · 접수된 의견은 편집부가 읽고 다음 단원에 반영합니다.

고마워요! 소중한 의견이 잘 접수됐어요 🌿
편집부에 메일로도 보내기

눈을 감고…

대동법 → 상품·화폐 경제 → 신분제 동요,
그리고 실학·서민 문화를 떠올려 보세요.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