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원을 마치면 — ①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를 바탕으로 한 통치 체제(태종·세종·경국대전)를 갖춰 간 과정을 설명할 수 있고, ② 훈민정음과 과학·민족 문화의 발전을 짚을 수 있으며, ③ 사림의 성장과 임진·병자 양난이 조선에 남긴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왜 배울까?
새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정했을까요? 조선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생각 위에, 법(경국대전)·글자(훈민정음)·제도(6조·집현전)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힘으로만 세운 나라가 아니라 원칙과 제도로 운영한 나라였지요. 그 토대가 어떻게 쌓였고, 또 양난이라는 시련을 어떻게 겪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좋은 나라란 무엇으로 굴러가는가'를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쓰는 한글의 뿌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교과서의 약속. 연 역사교과서는 어느 정파에도 기울지 않습니다. 확인된 사실은 1차 사료와 학계의 정설로 적고,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여러 시각을 출처와 함께 나란히 보여 줄 뿐,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료를 읽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 — 그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 출발 점검 — 지난 시간, 기억하나요?
· 고려를 잇는 새 나라 조선은 어떤 사상을 나라의 바탕으로 삼았을까요?
· '유교로 다스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조선은 불교를 앞세운 고려와 달리 유교(성리학)를 나라의 바탕으로 삼았어요. 유교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 보고, 임금과 신하·부모와 자식 사이의 도리(예)와 법·제도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법전·학교·관청을 차근차근 갖춰 갑니다.
궁궐과 봄꽃 — 백성을 근본으로 세운 조선. 그림: 힉스필드 AI 수채 생성 · 연라이프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1 조선의 건국과 통치 체제
고려 말, 외적을 막던 장군 이성계가 요동 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립니다(위화도 회군, 1388). 권력을 잡은 그는 1392년 조선을 세우고,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어요. 새 나라의 설계자 정도전은 경복궁을 세우고 법전의 기틀을 닦으며 재상(신하) 중심의 정치를 꿈꿨지요. 뒤이은 태종은 6조 직계제와 호패법으로 왕권을 단단히 했고, 세종은 집현전을 두고 의정부 서사제로 신하와 의논하며, 북쪽에 4군 6진을 개척했습니다. 마침내 성종 때 기본 법전 경국대전이 완성되어, 조선은 유교 이념의 법치 국가로 자리를 잡습니다.
조선 통치의 두 축 = 왕권(태종) ↔ 신권(정도전)의 균형, 그 위에 경국대전이라는 법.
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을까
새 왕조는 옛 고려의 세력이 뿌리내린 개경을 떠나 새 출발을 하고 싶었어요. 한양은 한반도 한가운데에 있어 전국을 다스리기 좋고, 한강이라는 큰 물길로 세금(곡식)을 실어 나르기에도 알맞았지요. 산으로 둘러싸여 지키기에도 유리했습니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 두 설계
① 정도전(신권) — 똑똑한 임금은 드무니, 잘 뽑은 재상이 중심이 되어 임금을 보좌해야 나라가 안정된다. ② 태종(왕권) — 힘이 한 곳(임금)에 모여야 신하들이 다투지 않고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둘 다 '좋은 정치'를 바란 길로, 조선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갔습니다.
"조선은 세종이 세웠다"?
흔한 오해예요. 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이성계(태조)이고, 건국은 1392년입니다. 세종은 건국 뒤 약 30년이 지나 즉위해 훈민정음·집현전으로 나라를 꽃피운 임금이에요. '세운 사람'과 '키운 사람'을 갈라 기억합시다.
오늘과 잇기 — '경국대전'이라는 헌법
경국대전은 관리의 등급·세금·재판·교육까지 하나로 정리한 나라의 큰 법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헌법과 법전을 합쳐 놓은 셈이지요. 임금이 바뀌어도 같은 규칙으로 나라가 돌아가게 한 것 — '사람이 아니라 법이 다스린다'는 생각의 출발이었습니다.
🧩 사료 탐구실 — 훈민정음 서문(세종)
세종이 새 글자를 펴내며 직접 그 까닭을 밝힌 글입니다(현대어로 쉽게 옮김). 아래 구절을 눌러 보세요 — 그 한 줄에 담긴 세종의 마음이 아래에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그래서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두 쉽게 익혀 날마다 편히 쓰게 하고자 함이다.”
위 밑줄 친 구절을 누르면 — 그 한 줄이 알려 주는 훈민정음 창제의 뜻이 여기에 보입니다.
출처: 『훈민정음』 어제 서문(1446) — 인용문은 연라이프 자체 현대어 풀이·요약.
🔑 외우기 한 수
왕마다 한 가지! 태종=6조 직계제·호패, 세종=집현전·훈민정음, 성종=경국대전 완성. "태-세-성"으로 차례를 잡으면 통치 체제 끝!
✏️ 30초 떠올리기
훈민정음을 만든(창제한) 임금은?
정답은 세종.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라"는 애민정신으로 새 글자를 만들었어요.
성종 때 완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은?
정답은 경국대전. 유교 통치의 기본 법전으로, 조선을 법치 국가로 자리 잡게 했어요.
2 유교 질서와 빛나는 민족 문화
제도를 갖춘 조선은 이제 문화를 꽃피웁니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고(1443 창제), 3년 뒤 온 나라에 펴냈어요(1446 반포). 과학도 눈부셨지요 —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 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 우리 하늘에 맞춘 달력 칠정산, 농사 비법을 모은 농사직설. 한편 유교 윤리를 그림과 함께 가르친 삼강행실도도 펴냈습니다. 사회는 법으로는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지만(양천제), 실제로는 양반·중인·상민·천민의 네 층으로 살았어요.
아래 연표로 창제(1443) → 반포(1446) → 과학·문화 융성을 따라가 보세요.
▶ 재생을 눌러 훈민정음 창제·반포와 문화 융성을 단계별로 따라가 보세요.
무료 연표 애니메이션 — 영상이 아니라 코드로 그려, 데이터가 가벼워요.
훈민정음 창제 — 두 가지 풀이
① 애민(백성 사랑) — 어려운 한자를 모르는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려는 어진 마음에서 나왔다. ② 실용·통치 — 법과 교화를 백성에게 더 잘 전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이기도 했다. 두 풀이는 서로 어긋나지 않고, 서문에는 무엇보다 애민의 마음이 또렷이 적혀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에 반포됐다"?
창제와 반포를 헷갈리기 쉬워요. 1443년은 글자를 다 만든 창제의 해이고, 온 나라에 책으로 펴낸 반포는 1446년입니다. '만든 해(1443)'와 '펴낸 해(1446)'를 갈라 기억합시다.
더 나아가기 — '우리 하늘'을 담은 과학
세종 대 과학의 핵심은 우리 땅에 맞춤이었어요. 달력 칠정산은 한양을 기준으로 해·달의 움직임을 계산했고, 농서 농사직설은 우리 농부의 실제 경험을 모았습니다.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우리 현실에 맞게 지식을 세운 점이 빛납니다.
🔑 외우기 한 수
훈민정음 두 숫자 — 1443 창제·1446 반포("사삼 만들고 사육 펴냈다"). 과학은 장영실 한 사람만 잡으면 측우기·앙부일구·자격루가 따라와요!
✏️ 30초 떠올리기
훈민정음을 온 나라에 펴낸(반포한) 해는?
정답은 1446년.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예요. 1392년은 조선 건국!
자격루(물시계) 등을 만든, 세종 대의 과학자는?
정답은 장영실. 측우기·앙부일구·자격루를 만든 솜씨 좋은 과학자였어요.
3 사림의 성장과 임진·병자 양난
건국 공신의 후예인 훈구 세력이 권력을 오래 쥐자,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새 선비 무리 사림이 중앙에 등장합니다. 두 세력이 부딪치며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가 거듭됐지만, 사림은 서원(교육)과 향약(향촌 자치)을 발판으로 끝내 정치의 중심에 섭니다 — 다만 그 안에서 붕당이 갈리기도 했지요. 한편 밖에서는 큰 시련이 닥쳤어요. 임진왜란(1592)에 이순신이 한산도·명량에서 바다를 지키고 의병과 명의 지원이 더해져 막아 냈지만(정유재란까지), 곧이어 병자호란(1636)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안으로 훈구↔사림, 밖으로 임진(1592)·병자(1636) 양난 — 조선이 겪은 큰 시련.
구분
훈구 세력
사림 세력
뿌리
건국·세조 즉위 공신과 그 후예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선비의 학맥
기반
중앙 관직·넓은 토지(대지주)
지방 향촌, 서원·향약
학문
제도·실용 중시(관학)
성리학 도덕·명분 중시
흐름
15세기 권력 주도
사화를 겪고도 16세기 정치 주도(이후 붕당)
광해군의 중립외교 — 사실은 하나, 평가는 둘.사실: 광해군은 새로 일어난 후금과 기울어 가던 명 사이에서, 어느 쪽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중립외교를 폈습니다(이 사실은 다투지 않습니다). 해석은 갈립니다 — ① 실리(현실): 전쟁의 화를 피한 슬기로운 외교였다. ② 명분(의리):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에 대한 도리를 저버렸다.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고, 두 시각을 근거와 함께 견주어 봅니다.
🔑 외우기 한 수
양난 두 숫자 — 임진왜란 1592·병자호란 1636. 바다=이순신(한산도·명량), 사림은 서원·향약으로 컸다! "임진→병자" 차례만 잡으세요.
✏️ 30초 떠올리기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
정답은 1592년. 1636년은 병자호란, 1446년은 훈민정음 반포예요.
임진왜란 때 한산도·명량에서 바다를 지킨 장군은?
정답은 이순신. 수군을 이끌고 바다에서 일본군을 거듭 물리쳤어요.
🏺 유물로 보는 조선 전기
훈민정음 해례본 — 한글을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풀이한 책(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측우기 — 비의 양을 재던 조선의 과학 기구. 백성의 농사를 위한 발명이었어요.
경복궁 근정전 — 조선의 정궁, 왕이 즉위·조회하던 으뜸 건물. ⓒ Richard Fisher · CC BY 2.0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 훈민정음 해례본(PD) · 측우기(CC BY-SA 4.0) · 경복궁 근정전(ⓒ Richard Fisher, CC BY 2.0).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 한 장 핵심
1건국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 → 조선 건국 1392 · 한양 천도(1394). 유교를 바탕으로 한 새 나라.
5양난 — 임진왜란 1592(이순신·의병·명) / 병자호란 1636(인조 삼전도). 광해군 중립외교는 평가가 갈림.
📖 이 단원의 말 사전
위화도 회군
1388년, 요동으로 향하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권력을 잡은 사건. 조선 건국의 발판.
6조 직계제
6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임금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시행.
집현전
세종이 둔 학문 연구 기관. 훈민정음 창제 등 많은 학문·문화 사업을 도움.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세종이 만든 우리 글자(창제 1443·반포 1446).
경국대전
성종 때 완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 유교 통치의 토대가 됨.
붕당
학문·정치 견해에 따라 나뉜 선비들의 정치 집단. 사림이 정치를 주도하며 형성됨.
✓ 연습문제 — 3단
교과서 핵심 사실을 바르게 짚었는지 확인합니다.
1조선을 세운 인물과 건국 연도를 쓰시오.
정답·해설
이성계(태조), 1392년. 위화도 회군(1388)으로 권력을 잡은 뒤 조선을 세우고,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참 검증
2훈민정음을 만든 임금과, 창제·반포 연도를 쓰시오.
정답·해설
세종 / 창제 1443년·반포 1446년.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라"는 애민정신에서 만들었습니다.
3성종 때 완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 이름을 쓰시오.
정답·해설
경국대전. 관리·세금·재판·교육까지 하나로 정리한 유교 통치의 기본 법전입니다.
사료를 읽고 그 속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1훈민정음 서문의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라는 구절에서 읽을 수 있는 창제 정신을 서술하시오.
정답·해설
백성을 가엾이 여긴 애민(愛民)정신. 글을 모르는 백성도 제 뜻을 펴게 하려는 마음이 새 글자를 만든 까닭이었습니다.참 검증
2서문의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라는 구절은 한자가 아닌 새 글자를 만든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서술하시오.
정답·해설
우리말에 맞는 우리 글자가 필요하다는 '자주' 의식. 말과 글이 어긋나는 현실을 우리 실정에 맞는 글자로 풀어 낸 것입니다.
여러 시각을 견주어 근거를 들어 자기 생각을 씁니다. 정답을 외우는 문제가 아닙니다.
1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실리(현실)'로 볼지 '명분(의리)'으로 볼지 — 한 입장을 택해 근거 두 가지를 들어 서술하시오.
예시 답안·채점 관점
실리 입장 예: ① 임진왜란으로 지친 나라를 또 다른 전쟁에서 지켰다. ② 강해지는 후금과 굳이 맞서지 않아 화를 피했다. 명분 입장 예: ①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에 대한 도리를 저버렸다. ② 신하·백성이 따르던 유교 의리에 어긋났다. 채점 관점: '중립외교를 폈다'는 사실은 다투지 않고, 그 평가만 다룹니다. 어느 입장이든 근거 2개 이상이면 인정 — 핵심은 결론이 아니라 근거의 타당성입니다.
2임진·병자 양난이 조선 사회에 남긴 것을, 좋은 점과 아픈 점을 함께 들어 서술하시오.
채점 관점
채점 관점: 한쪽만 적기보다 양면을 함께 보면 좋은 답입니다. (예) 아픈 점 — 국토 황폐·백성 고통·신분 질서 동요. 함께 자란 점 — 의병·이순신처럼 백성과 군이 나라를 지킨 경험, 이후 사회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 사실에 근거해 균형 있게 서술하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 내 말로 설명하기
"조선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유교 국가'라 할 수 있는 까닭"을, 근거를 들어 두세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예시) 조선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생각 위에 세워졌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나라는 경국대전이라는 법으로 운영되었으며, 임금과 신하가 의논하며(왕권↔신권의 균형) 다스렸다. 힘이 아니라 원칙과 제도로 굴러간 나라였기에 유교 국가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흐름 · 계단 쌓기
아래에서 위로 차곡차곡 — 조선이 쌓은 것
건국에서 시작해 통치 체제·훈민정음·경국대전을 한 계단씩 쌓아 올리고, 꼭대기에서 양난의 시련을 맞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 따라가 보세요.
연필 크로키 '계단 쌓기(↑)' — 단원마다 그림이 달라져요. 외우지 말고 흐름을 느껴 보세요.
🌿 단원 마무리 — 눈 감고 떠올리기
위 계단(건국→통치체제→훈민정음→경국대전→양난)을 아래에서 위로 떠올려 보세요. 떠올린 만큼이 진짜 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