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 · 중학 역사② 성취기준 [9역13-01], [9역13-02], [9역13-03]
이 단원을 마치면 — ① 개항(강화도조약 1876)과 근대 국가를 세우려 한 노력(갑신정변·동학 농민 운동·대한제국)을 설명할 수 있고, ② 일제의 식민 지배와 이에 맞선 민족 운동(3·1 운동·임시정부·무장 투쟁)을 짚을 수 있으며, ③ 광복(1945)과 6·25,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길(4·19·5·18·6월 민주항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왜 배울까?
이 단원은 백여 년 동안 우리가 겪은 거센 물살의 이야기입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개항), 나라를 빼앗겼다가(국권 피탈), 온 민족이 일어나 되찾으려 했고(3·1 운동), 마침내 광복을 맞은 뒤 분단·전쟁을 거쳐 민주주의를 한 걸음씩 키워 왔지요. 가까운 과거라 사실과 해석이 더 또렷이 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확인된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여러 시각으로 차분히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교과서의 약속. 연 역사교과서는 어느 정파에도 기울지 않습니다. 다만 사실은 다투지 않습니다 — 일제 식민 지배의 불법성,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침략 전쟁은 정해진 사실로 적고 상대화하지 않습니다. 해석이 갈리는 현대 정치사(정부 수립·민주화 등)는 학계의 정설과 사실을 중심으로 담담히 쓰고, 특정 정파의 틀이나 인물 미화·단죄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여러 시각으로 —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목표입니다.
🧭 출발 점검 — 지난 시간, 기억하나요?
· 조선 후기, 나라 밖에서 통상(무역)을 요구하며 다가온 배들을 무엇이라 불렀을까요?
· '근대 국가'란 옛 나라와 무엇이 다른 나라일까요?
서양의 배들을 '이양선(異樣船, 모양이 다른 배)'이라 불렀어요. 근대 국가는 신분제 같은 옛 틀을 넘어 법과 제도, 국민의 권리, 자주적 외교를 갖춘 나라예요. 이 단원은 우리가 그런 나라를 세우려 애쓴 백여 년의 이야기입니다.
독립문과 새 시대 — 거센 물살의 근현대. 그림: 힉스필드 AI 수채 생성 · 연라이프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1 개항과 근대 국가 수립 노력
19세기, 서양과 일본의 배가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옵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고 왕권을 세우는 한편, 통상 요구를 거부했어요(병인양요 1866·신미양요 1871, 곳곳에 척화비). 그러나 곧 일본의 강요로 강화도조약(1876)을 맺어 문을 엽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지요. 이후 나라를 어떻게 지킬지를 두고 개화 vs 위정척사가 맞섭니다. 갑신정변(1884, 급진 개화·삼일천하), 동학 농민 운동(1894, 반봉건·반외세), 갑오개혁(1894), 대한제국 선포(1897·광무개혁)·독립협회까지 — 근대 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개항(1876) → 근대 국가를 세우려는 여러 갈래의 노력.
왜 강화도조약을 '불평등'이라 할까
조약에 치외법권(일본인이 죄를 지어도 조선 법으로 못 다스림)과 해안 측량권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한쪽(일본)만 권리를 갖고 의무는 적은 대등하지 않은 약속이라, 이런 조약을 불평등 조약이라고 합니다.
개화 vs 위정척사 — 두 시각
개화파 — 서양·일본의 제도와 기술을 받아들여 빨리 힘을 길러야 나라를 지킨다. 위정척사파 — 우리 것(바른 것)을 지키고 바깥의 그릇된 것을 물리쳐야 한다. 둘 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왔지만, 방법을 두고 갈렸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시대의 고민으로 읽어 보세요.
"흥선대원군은 무조건 문을 닫았다"?
꼭 그렇진 않아요. 대원군은 왕권을 세우고 외세의 강요를 거부했지만, 그 목적은 '나라의 자주를 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강화도조약(개항)은 대원군이 물러난 뒤의 일이에요. '쇄국=무조건 나쁨'으로 단정하기보다 왜 그랬는지를 함께 보는 게 좋습니다.
더 나아가기 — 동학 농민 운동의 두 외침
1894년 농민들은 '안으로 잘못된 정치를 고치고(반봉건), 밖으로 외세를 막자(반외세)'고 외쳤어요. 신분 차별과 가혹한 세금을 바로잡고, 일본의 간섭에 맞서려 한 거예요. 비록 좌절했지만 그 요구의 상당수는 뒷날 갑오개혁에 반영됩니다.
🧩 사료 탐구실 — 동학 농민군의 외침(1894)
1894년 일어선 동학 농민군이 내건 뜻을 알기 쉽게 간추렸습니다. 아래 구절을 눌러 보세요 — 그 외침이 가리키는 바가 아래에 나타납니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케 하자.신분의 차별과 가혹한 세금을 없애자.나라를 넘보는 외세(일본)를 몰아내자.”
위 밑줄 친 구절을 누르면 — 그 외침이 담은 '반봉건·반외세'의 뜻이 여기에 보입니다.
출처: 동학 농민 운동 관련 격문·요구(1894) — 인용문은 연라이프 자체 요약·번역.
🔑 외우기 한 수
근대 사건 세 숫자 — 강화도조약 1876 · 갑신정변 1884 · 동학 농민 운동 1894. "76→84→94, 10년 간격"으로 외우면 쉬워요!
✏️ 30초 떠올리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불평등 조약은?
정답은 강화도조약(1876). 치외법권·해안 측량권이 담긴 불평등 조약이에요.
1894년 반봉건·반외세를 외친 농민들의 운동은?
정답은 동학 농민 운동. 잘못된 정치를 고치고(반봉건) 외세를 막자(반외세)고 외쳤어요.
2 일제의 식민 지배와 민족 운동
일본은 을사늑약(1905)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끝내 국권을 강제로 빼앗습니다(국권 피탈 1910). 처음 10년은 헌병과 무력으로 억누른 무단 통치였어요. 그러나 1919년, 온 민족이 비폭력으로 독립을 외친 3·1 운동이 일어나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집니다. 1920년대 일본은 겉으로 부드러운 척한 문화 통치로 바꿨지만, 우리 쪽에서는 봉오동·청산리 대첩(1920) 같은 무장 독립 전쟁과 윤봉길 등의 의열 투쟁이 이어졌어요.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침략 전쟁을 벌이며 민족 말살 통치(황국신민화·강제 동원·일본군 '위안부')를 자행했고, 우리는 한글을 지키고한국광복군으로 끝까지 싸웠습니다.
통치 방식의 변화 = 무단(1910s) → 문화(1920s) → 민족 말살(1930s~).
무단 통치(1910년대) — 헌병과 무력으로 한국인을 강하게 억눌렀습니다.
무료 연표 애니메이션 — 영상이 아니라 코드로 그려, 데이터가 가벼워요.
사실 확인 — 다투지 않는 사실입니다. 일제의 강제 동원(노동력·병력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는 수많은 피해 생존자의 증언, 공식 문서, 국제 기구의 인정으로 확인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주장은 사료와 국제 사회의 인식에 어긋납니다. 이 교과서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시각 중 하나'로 상대화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아픔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왜 3·1 운동 뒤 '문화 통치'로 바꿨을까
3·1 운동으로 한국인의 거센 저항을 본 일본은, 무력만으로는 다스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겉으로는 부드러운 척하는 문화 통치로 바꿨지요. 그러나 이는 분열을 꾀하고 감시를 강화하려는 것이었을 뿐, 식민 지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화 통치라 살기 좋아졌다"?
오해예요. '문화 통치'는 이름과 달리 경찰 수를 크게 늘리고 친일 세력을 키워 민족을 갈라놓으려는 정책이었어요. 1930년대에는 이름·언어까지 빼앗는 민족 말살로 더 가혹해집니다. 통치 방식이 바뀌었을 뿐, 식민 지배가 부드러워진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기 — 광복은 거저 오지 않았다
3·1 운동의 임시정부, 만주의 무장 독립 전쟁(봉오동·청산리), 윤봉길 등의 의열 투쟁, 한글을 지킨 학자들, 그리고 한국광복군까지 —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쌓여 1945년 광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되찾은 것'이에요.
🧩 사료 탐구실 — 3·1 독립선언서(1919)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알기 쉽게 간추렸습니다. 아래 구절을 눌러 보세요 — 그 뜻이 아래에 나타납니다.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그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이는 정의와 인도(人道)에 따른 정당한 외침이다.폭력에 기대지 말고, 끝까지 질서를 지켜 떳떳하게 나아가자.”
위 밑줄 친 구절을 누르면 — 3·1 운동이 내세운 자주·정의·평화의 정신이 여기에 보입니다.
출처: 기미 독립선언서(1919) — 인용문은 연라이프 자체 요약·풀어쓰기.
🔑 외우기 한 수
국권 상실까지 두 숫자 — 을사늑약 1905(외교권 박탈) · 국권 피탈 1910. 그리고 되찾으려는 외침 3·1 운동 1919 → 곧바로 임시정부! "05→10→19"로 묶어요.
✏️ 30초 떠올리기
1919년 온 민족이 비폭력으로 독립을 외친 운동은?
정답은 3·1 운동(1919). 그 힘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어요.
3·1 운동 직후 세워진, 독립운동을 이끈 정부는?
정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수립되어 광복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어요.
3 광복과 대한민국의 발전
1945년 8·15 광복으로 우리는 35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1950년에는 6·25 전쟁이 일어나 온 국토가 큰 상처를 입었고, 1953년 휴전으로 분단이 굳어졌어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사람들은 경제를 일으켰고, 동시에 민주주의를 한 걸음씩 키워 갑니다 — 4·19 혁명(1960), 5·18 민주화운동(1980), 6월 민주항쟁(1987)을 거치며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가 자랐지요. 오늘날 한국은 경제와 문화(K-문화)로 세계와 어울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광복(1945) → 분단·6·25 → 민주화(4·19·5·18·6월항쟁) → 오늘.
연도
사건
한 줄 의미
1945
8·15 광복
35년 만에 나라를 되찾음 → 곧 38선 분단
1948
대한민국 정부 수립
새 나라의 출발(남북이 각각 정부 수립)
1950~53
6·25 전쟁
큰 피해와 분단 고착, 휴전
1960
4·19 혁명
잘못된 선거에 맞선 시민의 외침
1980
5·18 민주화운동
광주 시민의 민주화 요구
1987
6월 민주항쟁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진전
현대사를 읽는 우리의 태도. 정부 수립 과정, 전쟁의 책임, 여러 정권에 대한 평가는 학계 안에서도 논의가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이 교과서는 일어난 사실과 연도를 먼저 분명히 적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어느 한 정파의 틀을 씌우지 않습니다. 인물을 무턱대고 미화하거나 단죄하지 않으며, "학계에 이런 논의가 있다"는 정도로만 소개합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 외우기 한 수
현대사 세 숫자 — 광복 1945 · 6·25 1950 · 6월 민주항쟁 1987. 민주화 계단은 "4·19 → 5·18 → 6월항쟁" 세 걸음으로!
✏️ 30초 떠올리기
우리 민족이 나라를 되찾은 광복의 해는?
정답은 1945년(8·15 광복). 35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어요.
1987년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사건은?
정답은 6월 민주항쟁(1987). 4·19(1960)·5·18(1980)에 이은 민주화의 큰 걸음이에요.
📜 사료로 보는 1919
독립선언서(1919) — 우리 민족이 독립의 뜻과 평화를 세계에 밝힌 선언. 3·1 운동의 정신이 담겼습니다.
독립문(1897) — 자주독립의 의지를 담아 세운 근대의 상징. 위키미디어 공용 · 공공도메인
안중근 의사 —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 위키미디어 공용 · 공공도메인
6월 민주 항쟁(1987) —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시민의 함성. 서울특별시청 · 공공누리 1유형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 1919년 독립선언서(PD). 자유롭게 가져가 쓰셔도 좋아요 · 출처는 꼭.
📌 한 장 핵심
1개항 — 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엶(최초의 근대적·불평등 조약). 흥선대원군의 통상 거부(병인양요·신미양요) 뒤의 일.
2근대 국가 노력 — 갑신정변(1884)·동학 농민 운동(1894, 반봉건·반외세)·갑오개혁·대한제국(1897)·독립협회.